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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호치민 행 비행기를 타려 공항으로 출발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조식을 먹지못했고 미리 조식 박스를 준비해달라고 했지만 준비가 되지않았다. 아마 추가로 직접 레스토랑이나 리셉션에 요청을 해야하는데 체크인시에만 말한 것이 주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면에서 아직 영어듣기가 모자람을 느꼈다. 확실히 하지 못한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길에 뒤를 돌아 뉴 월드 숙소를 전경을 보니 정말 거대한 단지였다. 아마 내 생에 다시 이곳을 올일은 없다고 생각되니 하루 더 투자해 숙소전체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푸꾸옥의 공항에서 매우 당황한 점은 공항이 갑자기 정전되었다. 그렇게 숙소에선 끊임없이 전기와 물을 써대는데 공항이 정전되다니 아이러니했다. 공항 등 공공 시설만 보면 공산주의 국가의 느린 발전이 느껴지지만 또 상업절 시설을 사용하면 동남아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아마 사실 공산주의의 한계일 것이다.

호치민에 내렸다. 호치민의 첫 인상은 '시끄럽다'였다. 푸꾸옥은 확실이 휴양지였고 호치민은 삶과 일터와 관광지가 접합된 도시였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수많은 오토바이 경적이 들렸다. 매연이 느껴졌고, 정신없는 간판과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각자 바삐 갈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그랩으로 숙소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수많은 택시들과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정차하고 플랫폼도 많아 정신이 없었다. 아마 이렇게 정신없는 곳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나름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장소의 가능성을 염두하게 된 건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첫 해외 여행이던 뉴욕행의 샌프란시스코 경유는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졌고 몸둘바를 몰랐었는데, 처음 보는 글자와 언어, 환경임에도 불안한 느낌은 들지않았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는 것인가 보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그랩을 잡고 메콩강을 따라 이동하며 숙소로 향했다. 강은 작고 굽이졌으며 투명하지 못했다. 한강이 크다는 것은 원래 알고 있었고, 암스테르담의 강같은 느낌이었다. 매우 많은 오토바이들이 차와 차 사이를 달렸다. 자체적으로 오른쪽 도로는 오토바이들이 사용했다. 오토바이 한대에 2사람은 기본이고 작은 꼬마들까지해서 4명이 탄 위험천만한 주행도 자주 보였다. 한국의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요리조리 가속하는 것은 우스울정도로 잘탔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르고 실용적인 것 같다. 다만 소리와 매연은 점차 바꿔나가야할 것이다. 신호는 초록불이든 빨간불이든 위에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고 이 덕에 운전자들은 속도조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특히 우리나라에 도입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 중 하나가 주황불에 무리하게 진입하는 것이고 반대편에서 초반 초록불에 빠르게 출발하며 부딪히는 것인데, 이런 숫자로 남은 시간을 알려주면 딜레마존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스콜이 쏟아졌다. 푸꾸옥에서보다 훨씬 굵고 바람도 강했다. 조금 누그러드나 싶어서 음식점으로 향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하게 쏟아졌는지 1분도되지않은 사이에 비로 인해 천장에 고여 쏟아지는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그 물이 바닥에 튀는 것만으로도 바지가 젖을 정도였다. 더 문제는 음식점에 겨우 들어갔지만 현금이 부족해 환전을 위해 비를 뚫고 돌아다녔다.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해 GS25 편의점이 보였고 환전소를 물어보았지만 환전소는 커녕 'money'영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15분정도를 걸었으려나, 겨우 세련된 카페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고 돌아다녔지만 환전소를 찾지는 못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오피스 빌딩의 신한은행을 방문하게 되었다. 적어도 한국은행이니 어느정도 내 계좌라도 사용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들어갔다. 신한은행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어필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숙소에 여권을 두고나와 여권 사진으로 신분을 인증했고 겨우 환전할 수 있었다. 직원분이 매우 능숙하게 영어도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에 문제도 없었다. 만약 영어 시험에서 여행중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말하라고 한다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특히 비만 안왔어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환전을 하고 식당으로 돌아가 분짜와 넴 등을 맛보았는데, 특별한 맛이 아니라서 너무 아쉬웠다. 향신료는 오직 채소에서만 느낄 수 있었으며 분짜는 야끼 군만두와 다를게 없었고 넴은 동그랑땡과 다를게 없었다. 쌀국수도 사실 베트남 현지라고해서 특별하지 않다. 한국에서 먹는 쌀국수와 다를게 없었다. 맛집이라고하지만 그닥 독특한게없는 곳에 실망하고 숙소로 돌아가 재정비를 했다.

정비 후 개인시간을 갖게 되었다. 호치민은 과거 사이공이라는 이름의 도시였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통치 중심지로써 수도였기에 문화 및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그렇게 프랑스 양식의 건물이 있고, 그 시절부터 베트남 음식의 특징인 반미와 커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파벳도 그 때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이전에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를 사용하긴 했지만 현재 베트남은 알파벳을 사용해 글을 표시하고 있으며 이는 주변의 태국과 매우 대비되는 사항이다. 이후 베트남 전쟁으로 승리하고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을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으로 바꾸어 호치민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고의 도시답게 다양한 문화 볼거리와 먹거리 모두가 갖춰져있으며 군으로 지역이 나뉘어있다. 보통 관광지는 대부분 1구역에 있으며, 나는 전쟁박물관을 관람했다.

 

전쟁박물관에는 거리에서 보지못한 많은 서양인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베트남어와 영어 모두 표기되어있어 읽기 좋았다. 사진자료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피해, 그리고 1층에 평화를 위한 각국의 의견에 대해 나열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민간인 학살, 고엽제로 인한 피해 등이 자극적으로 전쟁의 무서움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다보면 다소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북베트남인데도 피해자인 것으로 나타나있었다.  직감적으로 편향된 정보라는 것을 느꼈고, 이를 통해 여행중 쉬는시간에 베트남 전쟁과 베트남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전쟁박물관에 있는 것은 다소 피해를 어필하기 위한 장치가 더 많았으며, 북베트남 특히 베트콩도 민간인 학살 화전양면전술 등 말못할 행동을 많이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호치민이라는 사람을 워낙 국부로서 존경하는 모습들이 처음엔 멋있다고 느껴졌지만, 전쟁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공산주의적 사상을 보고나니 오히려 시청의 어린아이를 안고있었다는 호치민 동상이 위선적으로 보였으며 차라리 지금처럼 있는 동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쉽게 생각하면 호치민은 북한의 김일성과 비슷한 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 통일 후 경제정책에서 많은 희생을 강요했고 실패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한국전쟁의 빨치산과 같은 화전양면전술 혹은 민간인에 숨어 지내며 피해를 민간인으로 확대하는 전술을 펼쳤다.(여론을 움직이는 전략) 주변국의 도움을 받는 호치민 루트 및 구찌터널 전략도 구사했으며 테트공세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아닌 실수로 남베트남의 여러 베트콩 세력들이 자멸하게 두는 동시에 세계로부터 베트남 전쟁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미국 내 반전시위의 불을 지피는 전략을 사용, 결국 미군의 철수를 유도했다. 호치민이 남/북 통일 전 죽어서 망정이지 사실 통일했다면 분명 김일성과 같은 행보를 따르지 않았으려나 싶다.(물론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승계는 다를수도 있다) 이렇게 역사는 한쪽의 시각으로만 보면 안되며 호치민을 보면 어찌되었건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직접 느꼈다.

저녁 전 잠시 벤탄 시장이라는 시장거리를 갔다. 네팔의 시장거리를 생각했는데, 조금 더 작고 하나의 큰 구역으로 나뉜 곳에 과일, 기념품, 수공예품 등을 파는 곳이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지나갔는지 대부분 약간의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커피 싸요” “언니 가방 싸게 해줄께” 등등의 익숙한 억양이 들렸다. 하지만 다소 나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수공예품이라고 하지만 그다지 눈길가는게 없었고 다 중국산 공산품 느낌이 강했다. 더위를 식히려 사탕수수 음료를 마셨고, 과일가게에서 잭푸룻을 샀다. 실제 잭푸룻 을 보니 매우 커서 글과 그림으로 배우는 지식과 실제 배우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큰 과일이 나무에 열려있다는 것에 버티는 줄기가 신기했다.(최대 50kg) 저걸 수확하는 과정도 신기하고 그 큰 과일안에 먹기 편하게 생긴 과육도 신기하다. 동남아 과일은 여러모로 신기할 뿐이다. 두리안도 사실 40m(가로등 수준)까지 자라는 나무에 200개가 열린다고 하니 어디서 그런 영양소를 끌어오는지 대단할 나름이다. 그렇게 높은 나무에서 열린 과일은 딸 수가 없어 떨어지면 수확하는 것이고 매년 6명정도 떨어지는 두리안에 맞아 죽는다고하니 과일을 따는 행위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 외 벤탄시장은 사실 볼게 없었다. 커피는 뭐 마트에서 사가면 되는 거고 푸꾸옥 킹콩마트에서 지나친 티셔츠들이 아쉬울 따름. 책 방이 있다면 호치민 인물전이나 역사 관련된 것 혹은 사진첩이나 엽서를 사고 싶었는데,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바다를 마주한 나라라 그런지 해산물과 건어물이 굉장히 많았다.

저녁이 되고 해산물거리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결론적으로는 아쉬웠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이기에 망정이지 나는 조용한 곳에서 밥먹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시끄럽거나 의자가 불편하면 정신없기 나름이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라는 게를 양념가루와 함께 튀긴 메뉴는 사실 그냥 그랬다. 게라는 것이 맛은 있는게 확실한데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다른 해산물인 새우와 조개 관자 등도 어딜가든 거기서 거기이다. 다만 조개탕 중에 레몬그라스와 박하를 넣은 탕이 있었는데, 땀이 많이나서 수분이 부족하고 갈증이 항상 있기마련인 베트남에서 약간의 신맛과 단맛의 국은 한국의 무(파)와 마늘 베이스의 시원한 국물맛과 달라 이색적이고 지역 특색적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외 새우구이, 공심채(모닝글로리 - 이것은 한국인 입맛에도 매우 맞아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이 가게에선 맛조개와 함께 볶아서 맛은 좋았다. 조금 짜긴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꼬치구이 등등은 평범했다. 원화에 비해 싼거지 베트남 음식에서는 비싼편이고 무엇보다 짰다. 푸꾸옥의 피자가게가 훨씬 나았다.(트러플 파스타를 먹었으니)

저녁을 먹고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우는 부이비엔 길을 갔다. 한국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다. 클럽의 노래가 들린다. 화려함이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부이비엔을 가는 길에 다리를 건넜는데, 약간의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다. 에어컨은 꿈도 못꾸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쥐가 지나다니고 쓰레기가 쌓여있어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밀집되어 살고있었지만 부이비엔 거리는 클럽들이 즐비했고 1층에 위치한 많은 클럽들은 문을 열어놓은채 에어컨을 틀었다. 큰 노래 소리와 화려한 간판과 안쪽의 스크린 빛이 쏟아졌다. 춤을 추는 여자들과 호객행위가 이어지고 해피 벌룬을 부는 사람들이 앉아서 웃고있었다. 공산주의 나라면 어느정도 빈부격차는 해결해줘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거리의 사람들이 에어컨은 아니더라도 불빛은 들어오는 집에 살아야 할정도는 되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럽의 사람들은 평일인데도 붐볐다. 사실 한국도 크게 다르진 않긴하다. 한국의 홍대와 강남을 가면 평일에도 클럽은 성행하고 수많은 쓰레기와 담배꽁초들이 바닥에 즐비한다. 한국도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고 홍대/강남의 땅에는 쥐와 바퀴벌레들이 돌아다니긴 한다. 이건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모든 사람이 잘 살수도 없고 모든 사회가 빈부격차가 없을 수도 없고 평일에 술을 마시며 노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다만 푸꾸옥에서 공항이 정전되는 일도 있었는데, 공산주의 1당체제의 국가에서 클럽은 이렇게 전기를 낭비하는게 이해가 안갈 뿐이었다. 관광수지가 주요 수입원이라면 조금만 더 길거리를 깨끗하게 하는게 국익에 도움이 될 것같다.

야식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쌀국수가 한국이랑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베트남 특유 향의 향신료 채소를 추가로 더 줄뿐이다. 나는 딱히 소스를 찍어먹지않고 그냥 먹는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이 있다. 유명한 쌀국수 집을 갔더니 사람도 많고 가격도 몇배로 비싸다. 호치민에서 야시장을 못갈 것 같지만 그래도 호치민은 도시 자체가 밤까지 성행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오후 퇴근시간대 보다 밤이되자 더 많은 오토바이를 본 것 같다. 시청의 순환 도로에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길을 건너는 게 무서울 정도로 오토바이들이 많은데, 무단횡단이 질서인 곳이라 건너면 건너지는게 재미있다. 물론 이건 계속해서 고쳐져야 할 문화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인 기지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인 에너지 낭비이다. 시각이나 청각적인 감각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무의식적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모두에게 효율적이고 다른 사회 발전이나 개인의 발전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밤이되어 숙소로 돌아오며 커피를 마셨다. 달걀 커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베트남 커피는 진한 편이라 그냥 블랙으로 마셔도 좋고, 설탕을 진하게 타서 쓰고 단맛이 동시에 나도 좋고, “쓰어다”라고 연유를 타서 진한 아이스커피를 마셔도 좋다. 기후 자체가 덥고 습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얼음과 당분이 가득한 커피로 보충해준다. 다만 커피들이 대부분 얼음만 가득이라 몇모금의 커피맛과 대부분의 얼음을 먹게된다.

 

여행책에서 말하듯 소매치기나 강한 호객행위는 사실 없었다. 순수한 모습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면 나름 있긴했던 것 같다. 환전소에 대해 성심성의 것 대답을 해주던 청년, 음식점 호객행위를 하지만 그래도 나름 친절하게 해주려는 이모, 부이비엔 클럽에서 호객행위를 하지만 손을 저으면 다시는 따라오지 않는 청년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순수한 느낌은 있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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