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까지 재즈를 배우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그루브'이다.
정확하게는 '업비트'인데, 평소에 내가 듣는 음악은 1,3박에 킥을 기준으로 한 다운비트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했던 음악들, 배우고 외웠던 음악들, 가사를 따라부르던 가요들 99%는 다운비트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체로 박수를 칠 때 엇박자로 박수를 치면 오히려 그 사람을 보며 웃는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2. 하지만 재즈 중 기초가 되는 스윙은 비트가 다르다. 2,4박에 강세가 들어가는 업비트이다. 생각으로는 쉽지만 막상 연주를 시작하면 유지하는게 어렵다. 특히 의도적으로 첫 2박은 기계처럼 하다가도 4박이나 곡의 중반부가 되면 다시 다운비트로 돌아온다.
3. 이런 다운비트에서 솔로를 하자니 당연히 스윙스러운 솔로가 나올리 없다. 축축쳐지고 지루하고 아이디어도 없어진다. 의미없는 노트만 반복한다.
3.1 그러나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백킹을 넣어주거나 연주 전에 대가의 연주를 듣거나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듣고나면 나도모르게 스윙느낌이 살아 솔로가 살아난다.
3.2 비슷한 사례로 펜타토닉 스케일의 솔로가 있다. 온음으로만 이루어진 이 단순한 스케일로만 솔로를 적용하다보면 소름돋게도 나는 궁상각치우에 머무른다. 지루하고, 동요같고, 경황이 없는 음들이 나열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연주 전 타인의 플레이를 들은 후 바로 이어서 내가 시작하면 얼추 그럴싸해진다.
4.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는 분위기의 관성이라고 치부하며 연습전 좋은 연주를 듣고 그 기세를 이어나가서 연습을 하거나, 연습 중에도 내가 영상의 연주자라고 상상하며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예컨대, 흑백으로만 영상을 기록하는 시절의 연주자라고 상상하고 디지털피아노를 치면서도 약간 사용감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치고 있다든지, 주변엔 어떤 사물이 있고 이 연주자의 감정적 상태는 어떤 것인지 등등 상상하며 대입하여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꽤나 효과가 있었다. 그런 상태로 연습을 하면 확실히 연습이 지루하지 않았고, 연주도 그럴싸했다.
5. 하지만 반전은 그렇게 그루브를 체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음감, 리듬감이 훨씬 좋은 전공생마저 연습은 기계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루브를 표현하기 위해 미묘한 3연음을 메트로놈을 항상 켜놓고 연습했고, 업비트의 리듬감을 어느 상황에서도 익히기 위해 2에 시작하거나 그 다음노트에 시작하는 연습도 기계적으로 했다고 한다. 특히 연습을 기계적이라고 직접 표현하는 걸 보면,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들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다.
5.1 3연음에 더해서 더 박자를 쪼개서 더 스윙스럽게 음을 당기는 것도 연습했고, 레이백하게 늘어지는 것도 의식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예술은 재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흑인의 그루브를 갖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그런 농담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거장들의 짧은 연주시간 뒤에 수많은 연습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약간이나마 느껴졌다.
6. 나도 그렇게 직접 박자를 쪼개 기계적으로, 의식적으로 스윙 비트를 연습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만큼 이 부분이 부족했었고, 이러한 의식적이고 기계적인 연습의 실행이 내 솔로의 분위기 전체를 바꿔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동요스럽고, 쳐지고, 서정적인느낌만 나는 연주가 아니게 되었다.
7. 이러한 비트 하나의 변화로 오른손의 잠재 범위가 달라진 느낌이다. 오른손으로 새로운 것을 할 때마다 재미를 느끼고 스윙스러움을 느낀다. 연습도 재밌어지고, 스스로의 연습에 부끄러움은 있더라도 한숨쉬는 일은 없어졌다.
8. 이것이 그루브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루브라고 말했지만, 나는 삶의 리듬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은 목표와 미션들이 있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보강하고, 책을 1년에 몇 권 읽고, 투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해서 몇 퍼센트의 수익을 낼 것이고 등등 연초에 세우는 계획들은 원대하다. 이러한 계획을 통해 올해는 어느정도 발전하고, 이 발전세를 이어가 몇 년 후에는 어느정도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8.1 하지만 이 계획들이 잘 되기는 쉽지않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발전이 있으려면 지금 현 상황에서 발전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에너지(의지/시간/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나는 이미 이 계획들을 실행하지 못한 삶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이 낄 틈이 없다. 몇일정도 의지로 해볼 순 있겠으나, 쉽게 꺾이고 변수가 발생하면(모임, 건강 이슈, 감정 이슈 등) 본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계획과 멀어지게 되고, 이는 회의감을 가져오거나 자존감의 상처만 입힐 뿐이다.
9. 그래서 그루브가 필요하다. 기계적으로, 의도적으로 삶을 재조정해야하는 것이다. 독서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서, 1달에 1권씩'이라는 실행방법 자체가 독서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독서를 위한 자투리 시간이 날리가 없다. 반대로 독서를 위한 시간을 강제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 10분이라도 좋으니 강제로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독서를 하도록 리듬을 만든다. 투자공부도 진지하게 해야하니 주말에 몰아서 하는게 아니라, 평일에도 일정 시간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는 것이다.
10. 그런 업비트 그루브가 있는 생활에 기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시간을 축적하다보면, 내가 계획했던 구체적 목표들을 실행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튜닝해야 할 것은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조정하면된다. 중요한 것은 발전이 있으려면 바뀌어야 하고, 바뀌려면 배킹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그루브가 없는 배킹에 스윙 솔로가 연주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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